
저는 부산을 그냥 바다 보러 가는 도시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해운대 가서 밀면 먹고 오면 되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이번에 직접 돌아다녀보고 완전히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송도 케이블카부터 흰여울마을, 태종대까지 하루 만에 훑었는데, 이게 다 같은 도시 맞나 싶을 정도로 풍경이 다 달랐습니다.
송도해상케이블카, 발밑이 뚫린 그 짜릿함
제가 직접 타보니 케이블카에 두 가지 종류가 있다는 걸 현장에서야 처음 알았습니다. 일반 캐빈과 바닥이 강화유리로 된 크리스탈 캐빈인데, 저는 당연히 크리스탈을 선택했고 그게 실수였는지 신의 한 수였는지는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크리스탈 캐빈(Crystal Cabin)이란 캐빈 바닥 전체를 투명한 강화유리로 제작해 탑승자가 발 아래 해수면을 직접 내려다볼 수 있도록 설계된 케이블카를 말합니다. 올라가는 내내 발밑으로 파도가 부서지는 게 그대로 보이는데, 고소공포증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정말 심각하게 고민해보시길 권합니다. 저는 처음엔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해수면 86m 상공에 올라서는 순간 다리가 살짝 풀렸습니다.
송도해상케이블카는 2017년 6월 '부산에어크루즈'라는 브랜드로 재개통한 노선으로, 송도해수욕장 동쪽 송림공원에서 서쪽 암남공원까지 1.62km 구간을 약 10분에 걸쳐 운행합니다. 여기서 파노라마 뷰(Panorama View)란 한 방향이 아닌 360도에 가까운 넓은 시야각으로 주변 경관을 한눈에 조망하는 것을 말하는데, 케이블카 안에서는 영도와 남항대교, 송도 해안둘레길, 기암절벽까지 한꺼번에 눈에 들어왔습니다. 바다 위에 떠 있는 느낌 덕분에 시원하다는 표현 말고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더라고요.
암남공원 도착 후에는 3층 전망대에서 잠깐 쉬었는데, 생각보다 공원 자체도 볼거리가 있어서 케이블카만 타고 바로 돌아오기엔 아까울 수 있습니다.
송도 케이블카를 탈 때 참고할 사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 크리스탈 캐빈은 일반 캐빈보다 탑승료가 높고 대기 시간도 더 길 수 있습니다
- 고소공포증이 있다면 크리스탈 대신 일반 캐빈을 선택하는 것이 낫습니다
- 맑은 날 오전에 방문하면 역광 없이 풍경을 감상하기 좋습니다
- 암남공원 쪽에서 송도 용궁 구름다리까지 이어서 걷는 동선이 효율적입니다
흰여울문화마을, 달동네가 산토리니가 되기까지
흰여울문화마을은 이름부터 예쁩니다. 봉래산에서 내려오는 물줄기가 흰 여울처럼 흐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2011년 이송도 지역 주민들이 도로명인 '흰여울길'에서 이름을 따와 공식적으로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솔직히 저는 처음에 이 마을이 원래 달동네였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직접 걸어보기 전까지는 그냥 예쁜 벽화마을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골목 안으로 들어가다 보면 그 흔적들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무한도전, 영화 '변호인',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 등이 여기서 촬영되면서 마을이 알려지기 시작했고, 이후 외지인들이 공폐가를 매입해 카페와 갤러리를 조성하면서 관광지화가 본격화됐습니다.
이런 현상을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라고 합니다. 젠트리피케이션이란 낙후된 구도심 지역에 외부 자본과 인구가 유입되면서 지역이 고급화되고, 기존 주민들이 높아진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밀려나게 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흰여울마을도 그 과정을 거쳐 지금의 모습이 된 셈인데, 여행자 입장에서는 예쁘고 좋은데 그 이면을 알고 나니 마냥 가볍게만 즐기기가 어렵더라고요.
그래도 마을 옆 해안가를 걷다 보면 포토존이 여럿 있고, 해안 절벽 위에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모습은 이국적인 느낌을 줍니다. 그리스 산토리니와 직접 비교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한국 안에서 이런 분위기를 낼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습니다. 지대가 높아 내려다보이는 바다 전경도 일품이었고, 해안 터널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은 생각보다 훨씬 잘 나왔습니다.
도시재생(Urban Regeneration) 사업이란 낙후된 도시 지역을 물리적·경제적·사회적으로 회복시키는 정책을 말하는데, 흰여울마을은 그 성공 사례로도, 젠트리피케이션의 우려 사례로도 함께 언급됩니다(출처: 국토교통부). 여행자로서 방문하는 건 자유지만, 이 맥락을 알고 걷는 것과 모르고 걷는 건 전혀 다른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태종대, 다누비 열차냐 도보냐 그것이 문제
태종대는 영도 남단에 위치한 국가 명승지로, 해안 절벽과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풍경으로 유명합니다. 명승(名勝)이란 경치가 뛰어나 국가가 지정하여 보호하는 자연유산을 말하며, 태종대는 1972년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28호로 지정되었다가 이후 국가 명승 제17호로 승격되었습니다(출처: 문화재청).
제 경험상 태종대는 체력에 자신 있다면 걸어서 돌아보는 게 훨씬 좋습니다. 걷다 보면 소나무 숲 사이로 바닷바람이 들어오고, 파도 소리와 바다 내음이 섞이는 그 감각이 꽤 특별했습니다. 그런데 전 코스가 만만치 않아서, 체력적으로 자신이 없거나 시간이 부족하다면 다누비 열차를 타는 것을 적극 권합니다.
다누비 열차는 4km에 달하는 해안 순환 코스를 운행하는 소형 관광 열차로, 전망대, 영도등대, 태종사 수국 군락지 등 주요 지점을 모두 커버합니다. 4km면 도보로 1시간 이상이 걸리는 거리인데, 열차를 타면 이동 자체도 편하고 내리고 싶은 곳에서 내려서 구경할 수 있습니다.
높은 바위 절벽과 바다가 맞닿는 풍경은 직접 보지 않으면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날씨가 맑으면 멀리 대마도까지 보인다고 하는데, 제가 갔던 날은 구름이 좀 끼어서 아쉽게도 대마도까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영도등대는 100년 이상 불이 꺼진 적이 없는 역사적인 등대로, 등대 자체보다 주변 신선바위와 망부석 등 전설이 깃든 바위들을 함께 보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생도(生島)라는 주전자 모양의 작은 섬도 눈에 띄는데, 이름에 '생(生)'이 붙은 건 사람이 살았던 섬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죽성 성당과 해양박물관, 숨은 한 끗
죽성 성당은 기장에 위치한 곳으로, 바다 암석 위에 세워진 하얀 벽과 빨간 지붕의 건물이 마치 유럽 해안 마을 어딘가에 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드라마 촬영 세트장으로 지어진 것이 원래 용도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인데, 성당 끝자락의 등대 형태 구조물과 바다가 어우러지는 풍경은 포토존으로서 최상급이었습니다.
이런 장소들을 랜드마크형 포토스팟(Photo Spot)이라고 부릅니다. 포토스팟이란 특정 구도나 배경이 촬영에 최적화되어 있어 방문객들이 집중적으로 사진을 찍는 장소를 말하는데, SNS 확산과 함께 관광지 트래픽을 끌어오는 핵심 요소로 작용합니다. 죽성 성당이 드라마 세트장에서 관광지로 변신한 것도 같은 원리입니다.
비 오는 날이나 더운 여름철에는 국립해양박물관을 추천합니다. 해양과 관련된 역사, 문화, 생태를 아우르는 국내 최초의 종합 해양 박물관으로, 멀티스크린과 320도 몰입형 스크린을 활용한 전시가 시각적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거대한 수족관과 먹이 주는 쇼도 어른이 봐도 꽤 볼 만합니다. 영도 바닷가 옆에 위치해 있어 박물관 밖 테라스에서 보이는 항구 전망도 덤으로 즐길 수 있습니다.
국립해양박물관은 해양수산부 산하 기관으로, 해양 인문학 교육과 전시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습니다(출처: 국립해양박물관). 비용 대비 만족도 면에서 부산 실내 명소 중 손에 꼽힐 만한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산은 하루 이틀로는 절대 다 못 보는 도시입니다. 제가 이번에 다녀온 코스만 해도 꽉 찬 하루가 필요했고, 그것도 일부를 빠르게 훑은 수준이었습니다. 처음 방문이라면 송도 케이블카와 흰여울마을, 태종대 세 곳을 묶는 동선이 효율적이고, 여유가 있다면 죽성 성당과 해양박물관을 하루 더 투자해서 돌아보시길 권합니다. 부산은 볼수록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도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