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콕 여행을 앞두고 "하루 비는데 어디 가지?" 고민해 본 분이라면 아유타야를 한 번쯤 들어봤을 겁니다. 저도 딱 그 상황이었습니다. 반신반의하며 다녀왔는데, 솔직히 하루로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UNESCO World Heritage Site)으로 등재된 이 도시, 기대보다 훨씬 묵직했습니다.
아유타야는 어떤 도시인가 — 경주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아유타야는 1351년부터 1767년까지 번영한 아유타야 왕국의 옛 수도입니다. 400년 넘게 동남아 교역의 중심지였던 도시가 단 하루 버마(현 미얀마)의 침공으로 초토화된 곳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경주 같은 역사 도시인데, 규모나 밀도 면에서 꽤 비슷하다고 느꼈습니다.
일반적으로 아유타야는 "방콕에서 당일치기로 가볍게 다녀오기 좋은 곳"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유적지 하나하나가 생각보다 넓고 흡수해야 할 역사적 맥락이 많아서, 하루 코스로 다 둘러봤다고 말하기가 부끄러울 정도였습니다. 아유타야 역사공원(Ayutthaya Historical Park)만 해도 면적이 약 289헥타르에 달합니다(출처: 유네스코).
방콕에서 아유타야로 가는 방법은 크게 네 가지입니다.
- 택시 또는 픽업 차량 (빠르지만 비용 부담)
- 버스 (모칫 북부터미널 출발, 저렴하나 시간이 걸림)
- 기차 (후알람퐁 역 출발, 3등석 기준 요금이 매우 저렴)
- 일일투어 (편하지만 자유도가 낮음)
왓마하탓에서 확인한 것 — 기대와 실제 사이
아유타야의 랜드마크라면 단연 왓마하탓(Wat Mahathat)입니다. 1370년경 건축된 이 사원은 버마 침공 당시 가장 심하게 파괴된 곳 중 하나입니다. 일반적으로 "보리수 뿌리에 감긴 불상 머리"로만 유명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가 직접 가보니 그것만 보고 오기엔 정말 아깝습니다.
사원 곳곳에 머리 없는 불상이 즐비합니다. 전쟁 당시 상대국의 정신적 상징성을 훼손하기 위해 집중적으로 불상의 머리를 절단했다고 전해집니다. 이를 성상파괴주의(Iconoclasm)라고 합니다. 여기서 이코노클라즘이란 종교적·이념적 목적으로 성상이나 상징물을 의도적으로 파괴하는 행위를 뜻합니다. 단순한 전쟁 피해가 아니라 문화적 말살을 노린 것이라는 점이, 현장에서 그 불상들을 마주했을 때 더욱 묵직하게 느껴졌습니다.
보리수 뿌리에 감싸인 불상 머리 앞에서는 사진 촬영 시 반드시 몸을 낮춰야 합니다. 불상의 머리보다 높은 위치에서 사진을 찍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으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제가 직접 현장에서 봤는데, 이를 모르고 서서 사진을 찍으려다 현지 직원에게 제지당하는 여행객이 꽤 있었습니다. 미리 알고 가시면 민망한 상황을 피할 수 있습니다.
왓프라시산펫(Wat Phra Si Sanphet)도 놓치면 아쉬운 곳입니다. 과거 왕실 전용 사원이었던 이곳은 스리랑카식 체디(Chedi) 세 기가 나란히 서 있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여기서 체디란 불교 전통에서 사리나 성물을 봉안하기 위해 세운 탑 형식의 구조물을 의미합니다. 버마의 침공으로 내부의 황금 불상과 건물들은 모두 소실되었고, 지금은 웅장한 체디만 남아 있습니다. 태국 국보급 유적지로 손꼽힐 만한 규모였습니다.
아유타야를 제대로 느끼려면 — 당일치기의 한계와 현실적 조언
아유타야에서 배를 타고 일몰을 바라보며 역사공원으로 이동하는 경험도 있었는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노을이 물드는 유적 위로 빛이 쏟아지는 풍경이 생각보다 훨씬 강렬했습니다. 이걸 즐길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왓로카야수타의 와불상(臥佛像)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와불상이란 부처가 열반에 드는 모습을 형상화한 누워 있는 불상으로, 동남아시아 불교 사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형태입니다. 그런데 이 불상은 최근에 복원 작업을 했는지 색이 너무 선명하게 칠해져 있어, 주변 유적과 동떨어진 느낌이 들었습니다. 세월의 흔적이 오히려 더 큰 이야기를 담는다고 생각하는 저로서는 아쉬운 부분이었습니다.
아유타야 역사지구는 199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현재도 태국 정부 주도 아래 지속적인 보존 및 복원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출처: 태국관광청). 그런 만큼 방문할 때마다 유적의 모습이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두시면 좋겠습니다.
아유타야를 제대로 보고 싶다면, 저는 최소 1박을 권합니다. 당일치기는 가능하지만 "다녀왔다"는 것과 "느꼈다"는 것은 다릅니다. 역사가 400년 넘게 쌓인 도시를 하루 동안 훑고 지나가기엔, 이 도시가 품고 있는 이야기가 너무 많습니다. 다음에 다시 온다면 아유타야에 짐을 풀고,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걷고 싶습니다.